배추 때문에 밭 털러 오시는 친척들이 많아요 :: 2010.10.07 09:27

'이번에 올라갈 때 고추랑 배추 좀 가져다 줄까?'
'아냐, 힘든데 뭘 바리바리 싸가지고 올라와. 사먹어도 싸'


작년에 어머니와 이모가 했던 대화입니다..
언제든 먹거리를 직접 키워먹는 편이라 친척들이나 가족들에게 나눠줄 정도의 채소는 늘 넉넉했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말린 태양초, 고사리 나물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기른 고추, 배추, 무, 상추, 콩같은 것도 나눠먹을 만 했죠. 그렇지만 친척들은 수고해서 만든 것인 걸 알기에 무겁게 들고 오느냐 고생하니 차라리 비싸게 팔라며 얻어먹길 거절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늘 도시 생활에 바빠 안부 전화도 간신히 하던 분들이
직접 기른 먹거리가 부족하다며 전화를 걸어옵니다.
간만에 하는 안부 전화라 쑥스러울 만도 하건만 어지간히 구할 곳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원래 채소는 근거리 농업으로 딱 소비될 만큼만 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평소 보다 1% 라도 생산량이 줄면 가격 변화폭이 제법 커지는 거 같습니다.
물량이 모자라지기 때문이죠. 전반적으로 올해 작황이 안 좋은데다 재배 면적이 줄어들어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고, 고질적인 유통구조까지 보태어서 김치가 귀한 음식이 되버렸습니다..


주말에 내려온 친척이 얼굴 보자 마자 일단 시간이 없으니 밭부터 보자 합니다.
구할 거 다 구하고 집으로 가자면 시간이 빠듯하긴 할 겁니다..
고추 장아찌 담을 풋고추 가득 따고, 겉절이 담을 얼갈이 배추 뽑고, 아이들 간식 먹일 찰옥수수 까고, 태양초 말릴 붉은 고추도 좀 따고, 밭에 먹으려고 심어둔 몇가지 쌈채소 뜯어내시고, 짐쪄먹을 호박잎이랑 된장국에 넣을 푸른 호박, 죽해먹으면 좋을 늙은 호박도 두어통 따시고, 봄에 말려둔 고사리도 좀 담고, 비싸서 구경도 못 해봤다며 복숭아랑 포도랑 몇박스 실으시고,
하여튼 제법 줏어담으시더니..
산에 좀 가자 합니다..

산엔 요즘 버섯이 많이 납니다..
느타리 버섯, 밤버섯, 송이버섯, 가지버섯, 싸리버섯 등 자주 따던 사람 아니면 구분도 못할 맛있는 버섯들이 얼려두면 겨울 내내 좋은 반찬이 됩니다. 송이는 그리 자주 나오진 않지만 종종 운 좋게 걸리면 식구들끼리 나눠먹을 양 정도는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번주에 오신 분은 잎이 벌어진 송이를 한자루 따셨더군요. 내려온 차비 보다 더 많이 건져서 가시겠더라구요.
낯선 분들이야 길도 모르고 멧돼지 만나서 당황하면 다칠 수도 있으니..
일단 농사일 바쁜 와중에도 길안내하러 따라가줘야 합니다..
간만에 친척 얼굴도 보고.. 또 인사도 하고
덕분에 저희도 버섯 구경은 했습니다만.. 뒤끝이 좋지만은 않은 풍경이죠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운 도시 서민들의 삶..
하품 과일이나 낙과 좀 싸게 구할 수 없겠냐며 아는 사람들에게 오는 연락도 사실 만만치 않습니다..
인심쓰느냐 일부러 손질해 가져가 주는거지.. 당연히 그런 소량 거래가 큰 돈은 안됩니다.
싸게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푸성귀가 너무 값이 올라버려..
배곯을 때 부지런히 산을 돌며 먹거리를 구했듯이 도시 사람들이 농촌에 내려와 푸성귀를 걷어가고 있습니다..

김치없이 고기 만 드시는 분도 분명 계실테고..
정 필요하면 외국산 과일 싸게 드시면 된다고 하시겠지만..
푸성귀 조차 국산을 맘놓고 못 먹게 된다는 이 허기짐..
고유 음식이라는 김치는 그래도 국산으로 담아먹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배고픔.. 푸성귀의 빈곤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꼭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하기에 여기까지 내려와야 하는 그분들이 어쩌면 측은하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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