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이르고, 사람 마음은 바쁘고, 햇빛은 더디고 :: 2008/09/05 04:46

올해는 9월 13일부터 추석연휴입니다.
예년에 비해 추석이 한참 이르고, 대목도 빨라 이 지역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농산물은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평소에는 과일 사먹을 돈, 좋은 농산물 사먹을 돈을 아끼더라도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나 햇음식은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도 올해 생산된 국내산 농산물을 선호하는 편이지요.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는 시기입니다.
덕분에 추석 전후에 가격이 가장 좋고, 많은 과일들이 그때 출하할 수 있도록
출하시기를 조정하기 위해 애씁니다.
어릴 적 기억에 11월이 거의 다 되어 출하하는 사과나 배 종류들도 종종 있었던 거 같은데
최근엔 추석을 전후에 출하시기가 맞춰졌더군요.
남부 지방에선 아마 햇쌀을 일찍 출하하기 위해 유달리 애쓰신 농민들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이쪽은 상대적으로 북쪽이라 벼가 실하게 자라긴 했어도 익지는 않았습니다. 무거운 벼 때문에 고개를 떨군 벼들이 많죠. 다음 달 쯤 노랗게 익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여름부터 피었던 달맞이꽃과 파란색 달개비꽃들이 지천입니다. 20년전에 씨를 뿌려두었던 코스모스도 한참이더군요. 길가의 가을꽃들이 참 보기좋습니다.


예년에도 한번 이야기한 적 있는 지 모르겠는데 수확철엔 모든 삶의 궤도가 농산물에 맞춰집니다.
길거리엔 공판장으로 과일들을 바쁘게 실어나르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평소에 차가 자주 지나다니지 않던 도로가 요즘은 정말 바쁘게 붐빕니다.
어린 아이들이 다칠까봐 도로 부근에 아예 나가지 말라고 할 정도입니다.
벼들이나 과일들이 밤에 잠을 자야 맛있게 익는다는 이야기 때문에
포도밭이나 논 근처에 있는 가로등들은 모두 꺼두기도 합니다.
멀리서 보면 일찍 잠든 농민들의 집은 캄캄한 어둠 뿐일 때가 종종 있죠.
별 영향이 없을 것같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확실히 밤새 켜둔 가로등 아래에서 자란 열매들이 다른 곳에서 자란 열매들 보단 덜 익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까맣게 어두운 밤 때문에 농작물 지키기에 긴장한 농민들도 많습니다.
원래 평소에도 집안 사정이 어려운 빈곤한 분들이 종종 텃밭이나 작은 밭은 조금씩 덜어간다고들 했습니다만
추수철이 되면 전문적인 털이들이 기승을 부리기 마련입니다.
(덜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털어가는 거죠, 싹쓸이입니다)
창고에 넣어둔 태양초 고추를 가져가는 도둑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닿지 않는 숲속의 밭에서 열매들을 훑어가는 팀들도 있습니다.
몇년전에 어느 외딴 집은 집을 지키는 개를 죽이고 주인 부부를 묶고 난 뒤에 가축들을 훔쳐가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찰인력이 적고 인적이 드문 시골은 이런 어두운 가을철이 오면 잠을 자지 못하고 긴장을 하곤 합니다. 집 밖에 개를 키우는 집이 많은 것도 그런 까닭이죠.
그리고 경찰에서는 농촌지역으로 유입되는 지방도나 국도에 CCTV를 설치하곤 합니다
낯선 차량이 들락거릴 경우엔 종종 체크하고 도둑맞았다는 연락이 오면 출입구를 모두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개부터 시작해서 작은 고추밭까지 털어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훔쳐가기 쉬운 작물일수록 긴장한다고 합니다.

집에서 키운 고추도 종종 도둑맞는다더군요.


이런 큰 도둑들도 무섭고 사람이 다칠 수도 있지만,
작은 절도 행위들, 종종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현상들도 종종 일어납니다.
다음에 가봤더니 '농작물 지키려다 사람 잡을라(서울신문)'라는 기사가 났던데
이 기사에 나온대로 수확철이 되면 농작물을 망치는 동물들 때문에 크고 작은 소란이 일어납니다
한밤중에 공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곤 하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사과, 포도, 복숭아를 비롯한 비싼 작물을 수시로 쪼아먹는 까치와 비둘기들 때문에..
새를 쫓으려 자동으로 공포탄 소리를 내게 만든 시스템 때문입니다.
꽤 멀리까지 들리는 큰 소리 탓에 안 그래도 피곤한 사람들 잠도 못 자겠다며 종종 민원도 들어오지만
일년에 단 한번뿐인 수확, 빚까지 지며 농사지은 그 결실을 지키려는 심정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잠을 못 자서 화가 났다가도 결국엔 그냥 넘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열매가 달린 밭에는 못 쓰는 시디들을 여기저기서 줏어 모아 높게 달아놓는 풍경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것을 보면 놀라서 새가 달아난다고 믿기 때문인데 사실 동물들은 학습능력이 빨라 이런 것들에 금방 적응하기 마련이라 농민들이 애가 탑니다.

멧돼지란 동물은 원래 사람 근처에 다가오지 않습니다만
사람들이 키워놓은 고구마같은 건 잘 캐먹습니다.
그래서 종종 밭이 있는 근처까지 내려왔다가 밀렵하시는 분들이 쳐둔 덫에 걸리거나
뭔가에 다쳐서 화가 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람에게 덤빈다고 하더군요.
(화가 나면 성격이 달라지는 동물이 멧돼지입니다)
덕분에 버섯이나 산나물, 산 부근의 깊은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안전이 걱정되곤 하지요.
그 기사엔 멧돼지를 잡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직접 공격하는 행위는 제법 위험하다고 압니다.
이 부근은 공포탄이나 다른 장치를 써서 멀리 쫓아내는 게 전부라고 합니다
실제로 사람이 있는 부근까지 잘 오지 않는게 멧돼지기 때문에
오히려 성묘하는 부근 묘에 멧돼지가 있다는 건 멧돼지의 성격상 성묘객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일단 대피해야 하는 장소란 말이죠.

농촌에서 수확을 하고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시기는 정해져 있습니다. 추수기엔 그래서 다들 긴장한 상태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 애타는 심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모르지 않을까요.


그리고 기사 아래에 답글이 달린대로 '살만큼 사는 사람들'의 테러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위에 잠깐 적은대로 실제 이 부근에는 형편이 아주 안좋은 극빈자가 종종 살고 있습니다.
법적 금치산자로 선정될 정도로 의식이 없으신 분이 여기저기 헤매면서 폐를 끼치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남의 밭의 작물을 몰래 캐다 먹는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남의 밭일도 못하는 처지)
국가에서 아주 약간의 지원을 받을 수준이 되지도 않는, 그런 분들이기 때문에
약간씩 손해를 보더라도 눈감아주고 큰소리나지 않게 넘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형편의 사람들에겐 그리 박하게 굴지 않죠.
(차라리 평소에 하나씩 건내주기까지 하니까요)
또 어떻게 농사 작물인지 알기 때문에 험하게 손대거나 많은 양 가져가지도 않습니다.
제정신일 때는 농사일이라도 거들어주는 착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얄미운 건 고급차를 끌고 와서 남의 밭을 '당당히' 휘집고 가는 방문자들이라고 합니다.
명절 때 낯선 사람이 방문해 된장국 끓일 때 쓰려고 키워둔 호박을 뚝 따가기도 하고
길가에 가까운 과수원에서 열매를 따겠다며 (어디서 주웠는지) 장대를 들고 설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과일 따는 게 교육이 된다며 따는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더군요..)
포도 냄새가 좋다며 그냥 한박스 따가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성묘하다가 밤이나 대추를 털어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더덕을 소량 기르다 뽑혀보신 어르신도 있다고 하던데..
(의외로 공산품이나 작물 이외의 식재료는 흔치 않기 때문에 그 작은 열매들이나 호박이 노인 어르신들에겐  귀한 음식입니다 - 절대 과소비하지 않는 분들이니까요)
왜 남의 집이나 밭에서 허튼 짓을 하느냐 물으면 '시골 인심 박하네' 소리나 듣기 일수라는 거죠.
엄연한 절도 행위에 왜 시골 인심이 등장하는 지 알 수 없으나
이 시시콜콜한 사례들 때문에 점점 더 경계를 하게 되는게 지금 쯤이라고 합니다.
시골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TV 드라마 속에 나오는 놀이 공원이나
체험학습 공간같은게 아니란 걸 언제쯤 알게 되는 걸까요.
그 작은 수확물들이 훼손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올해 혹은 내년 한끼를 굶을 수도 있는 그런 어르신들도 있다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가을 하늘과 높은 산을 바라 보며 올 가을은 태풍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실제 이곳 사람들의 심정이 되보기 전엔
이 푸념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게 가장 마음 아픈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했다고
넉넉한 마음은 곳간에서, 그리고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그런 마음에서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올해 추석은 너무 빨라서 고냉지 농업을 하는 우리 동네같은 곳은 약간은 손해가 오기도 합니다
복숭아, 사과, 포도가 9월 말까지 익는데 너무 이른 추석 탓에 제 값을 받기 힘들 수도 있거든요.
농산물 품질 때문에 많은 수량 작업할 수도 없고 그래서 애가 타고 있습니다.
햇빛이 빨리 나서 빨리 익어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길 바라고 계시는 어르신들도 많을 거에요.
마음이 바쁩니다. 햇빛도 바쁩니다.
열매들도 마음들도 무럭무럭 익어갑니다.
모두들 즐거운 한가위 명절 맞으시고, 즐거운 날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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